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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업 정리본 - 인문학탐구 (전쟁/과학혁명/민주주의/이주교류/페미니즘)

꼬부치 2019. 9. 29. 23:08

전쟁


전쟁은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었고 파괴도 발생했지만 그로 인한 이익(탐색과 이해, 교류와 나눔의 장)도 있었다. 실제로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은 암흑의 시대를 벗어나 근세로 도약하는 도움닫기의 시대였다

 

근대적 합리성에 바탕한 20세기 과학과 기술의 문명이 인간에게 행복과 해방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와 파괴의 수단만을 발전시켜온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렇다면 20세기 문명이 이룩한 업적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근대성의 표상인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러한 회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의 과학과 이성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극복이 필요할까, 아니면 근대 이성이 내포한 세가지 영역(과학-인지적, 도구적 이성, 예술- 심미적, 실천적 이성, 도덕- 도덕적, 실천적 이성. 다른 이성들에 비해 인지적-도구적 이성, 즉 과학적 합리성이 다른 영역들의 이성을 압도함으로써 이성들 사이의 균형이 깨졌고 그로인해 문제가 발생함.)사이의 균형과 통합이 과제인가가 근대와 탈근대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의 전쟁과 폭력, 그리고 평화의 문제에 대한 사유도 바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의 탐구와 무관할 수 없다

 

*종교와 과학이 전쟁의 의도에 이용될 수 있다. ‘당위성

*전쟁은 인간의 욕망폭력이라는 수단으로 표출되는 것

*전쟁의 일반적인 원인 : 세부사항에서 뽑아내 보자 (귀납적) 일반적원인을 막아내면 전쟁을 막을 수있지 않을 까? 명분과 실제가 일치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타당한목적으로 포장될 수 도 있다.

1) 누구를위한 전쟁? : 국가전체? 아닐수도 (ex)성전

2) 왜 일어나는가 : 경제적문제 (동방무역, 각자의 이해관계) / 권력

*종교와 과학이 문제인가 인간이 문제인가??

앨빈토플러 문명과 전쟁론‘ “ 기술발전 > 첨단무기(전쟁의 양상이 깔끔해질수 있다)

하지만 전쟁을 지배하는 논리는 과학기술이 아닌 정치, 현대전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도 기술발전이 아닌 정치외교

자국의 지식, 정보우위를 각인시키고 싶은 정치인의 실질적으로 잘 안쓰이는 첨단무기 의 개발에 사회적 자원을 쏟고 홍보한다.

* 전쟁 = ’정치의 연장이다. : 권력의 관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이다.

권력 : 사회적 관계에서 행위자가 다른행위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 관철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확률

* 개별국 = 생존과 이익을 위한 안보/ 권력 추구가 구조적 원인이다. (국자관계체제에서 통용되는 전쟁의 정의)

* 전쟁의 최소화, 예방방안은? (민주평화론)

1) 국가간의 협력 증진

2) 국내 민주주의 심화 ( 민주주의독재=전쟁억제)

 

 

 

과학혁명


1. 과학혁명의 전개

과학혁명을 인간의 지적인 발달과 사회의 물질적 풍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빛나는 성취로 여겨질 수 있다. 모든 현상을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던 여러 과학자들의 움직임. 그러한 움직임으로 결국 자연현상에서 신비주의적 색채는 벗겨졌다. 이는 단순히 벗겨진 것이 아닌 인간에게 자연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인간은 곧 자연을 기계적인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발걸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분리하고 해석하려 했고 결국 전 지구적인 환경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를 고려하면 과학의 발전을 반드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우리는 기계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전일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2.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많은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긍정적인 영향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차 산업혁명은 공업에서의 기술혁신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권을 가져다주었지만,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를 온정적 관계에서 금전적 관계로 전환하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지위가 낮아지게 만들며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붕괴시켜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의 대립상태를 만들었다. 2차 산업혁명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여러 선진국이 산업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기술에 대한 개인의 의존도를 점점 높게 만들었다. 3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기도 했지만 스팸 메일, 컴퓨터 바이러스, 인터넷상의 지식 재산권 문제 등의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문제들을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을 직접적으로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선진국을 그저 모방하는 것이 아닌 한국적 미래 전망을 정립하는 작업이 정교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3. 가사기술

가사노동에서는 과학기술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미리 말하면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전기기로 더 많은 일을 간단히 할 수 있게 되어 옛날에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청소를 하루에 한 번꼴로 하게 된 점을 고려하면 더 이해가 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제 가사노동 시간은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준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여권신장)이다.

 

과학혁명의 발전으로 인간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것.

-인간 중심적 사고

종교의 역할 대체

->종교인들은 신과 영적인 것으로 세상을 해석했는데, 과학자들은 물질과 법칙으로 세상을 해석.

-자연을 과학적으로 분석, 해석하여 지배할 대상으로 봄

-> 과학기술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자연을 기계 법칙으로 이해하려고 함. 이러한 방향성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인간을 뇌, 심장, 혈관 등으로 분리하여 해석함.

but. 수명이 늘어난 것은 기술적인 혁신!

->과학혁명이 일어났다고 바로 수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적용으로 인해 수명이 늘어남.)

=>앞으로 인간이 나아갈 방향은 기계론적인 관점을 파괴하는 쪽이 아닐까?

 

토론 주제의 논점.

유전자 조각으로 인간 생명체 탄생

->장애로 인한 삶의 질 저하와 역차별 제거

vs

생명윤리와 인권의 문제 발생, 차별약화가 아닌 차별 심화 가능성

 

되짚어볼 문제!

-인간과 복제 인간의 차이는 뭘까? 인간이란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때 인간이 될까?

 

-A : 차이 1) 출생(조작vs자연) 2)사회적지위, 신분 (진짜vs상품)

 

*교수님 point

과학혁명 =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을 심어줌

종교,철학 > 과학(수단) > 인간중심적 사고

*인간중심정 사고 : 인간이 세계 해석이 가능하다. 자연을 지배, 해석의 대상으로 삼음.

사회진보(낙관론적 사고) , 인간도 관찰과 실험을 통해 해석 가능하다.

*원래 기술과 과학은 따로, 어느순간부터 과학과 기술이 합쳐짐 아는 것이 힘이다’= 폭력적인 언명

 

민주주의

 

민주주의 point

역사학의 출발은 과거가 아닌 현재. 역사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대의 민주주의체제가 잘이뤄졌는가?? 문제의식 (입법,사법,행정) 모두 !! 사법은 국민선출 X

삼권중 어느 부서도 대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간접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핵심가치대의’) + 민주주의(핵심가치가 대의X)

인민의 자기결정+ 자기지배 + 통치 = ‘민주주의 본질’ >> 이것을 위한 제도의 문제점 파악 필요

추첨제가 원래 선거제보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더 꿰뚫었다.

 

*교수님 말씀에 기반한 포인트

(1)민주주의는 매우 최근에 서구에서 시작된 사상 (19세기말~20세기 초)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테네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틀)

아르콘이었던 솔론이 시민단을 개편을 했다. 재산을 기준으로 네개의 계급으로 나눴고, 위의 두 계급은 아르콘이 될 수 있었다. 혈통에 의거하는 신분사회에서 능력에 의거하는 민주사회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후 클레이스테네스가 귀족들의 전통적인 세력기반이었던 프라트리아는 혈연적인 성격을 끊었다. 그는 프라트리아를 열 개의 부족으로 개편하고, 프라트리아가 담당했던 아테네 시민의 명부를 관리하고, 시민의 자격을 심사하는 일을 데모스(마을)로 이관했다. 500인 협의회 또한 그의 업적이다. 그의 개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 토대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허점

첫째, 추첨제의 환상 -무한재선가능

둘째, 노예제도와 제국주의- 솔론의 개혁에 의해 사람들은 노예제에서 해방됐지만, 노예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음으로 외국에서 노예를 들여왔다. 시민을 노예와 구분시켜주는 것은 자유인데, 그 자유의 의미는 정치의 참여였다. 아테네의 놀라운 민주주의는 내적으로는 노예제도이고, 외적으로는 제국주의 덕분이었습니다. 한편,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유인책이 필요했는데 민회에 출석, 배심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수당지급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재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일이었는데, 유일한 방법은 외부에서 돈을 구해오는 것이었다.(제국주의)

셋째, 대중독재-도편추방제(악용)

넷쨰, 자유로 위장된 전체주의

국가의 절대적인 힘 때문에 고대인들은 개인적인 자유를 알지 못했다“-자유란 “~로부터의 자유이지 “~을 할 자유는 아니기 때문

-민주주의가 살아나기까지

첫째, 중세의 영향 (가톨릭+봉건제->대의제, 입헌주의, 제한정부론, 소유권 등 개인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둘째, 근대국가의 등장

셋째, 사회계약론

 

-근대 민주주의

새로운 사회계층이 생겨남(시장 관계의 확산과 더불어 생산력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지배세력인 귀족과 충돌하게 됨)

미국의 독립선언서(1776):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나오며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1789):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음을

민주혁명

-민주주의의 진전

근대민주주의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 정치의 핵심은 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의회에 의한 대의제 정부였고, 대의제를 살리기 위해선

1. 종교 영향력의 배제

2.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일련의 개인적 권리

3. 소유권의 보호,

4. 정치적 권리로서 참정권

->참정권 확대

-민주주의의 변질

1890년대

이 시기에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대중현상으로서 국제적으로 등장. 전투적이고 의식적인 반체제 세력의 등장은 대처하기 어려웠지만, 것을 길들이는 새로운 전략이 나타나게 되고 마침내 대중민주주의의 시대가 오게 됨.

- 정치라는 곳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대중 선거주의 등장

->모든 사회주의 대중 운동에 중도적이거나 개혁적인 진영이 등장 (사회개혁, 복지강령 제시)

-국민적 정체성 새롭게 변함

-국경일, 국가, 국기, 공공 학교 체제, 대중문화, 제국, 스포츠 등은 대중 민주주의를 길들이는 주요한 요소가 됨

 

-유럽의 지배층은 대중 민주주의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됨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인식은 1900년후를 기점으로 긍정적인 인식으로변함. 심지어 최상의 정치적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실제의 성향과는 관계없이 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목소리를 높임. 20세기에는 거의 모든 정치 운동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함

-> 이는 곧 수많은 의도적인 왜곡과 조작이 벌어졌음을 뜻함

(선거제를 통해 다수의 의사가 모아지지 않도록 여러 정교한 제도적 장치가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만들었고, 확대된 민주화는 정치적 문제들이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의 시대는 공적인 정치적 위선의 시대, 또는 이중성의 시대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정치적 풍자의 시대임이 드러납니다.)

-민주주의의 의미에 혼란과 다양화가 일어남

자유주의의 핵심을 이루던 선거에 의한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주요한 구성 요소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한 부류인 자유민주주의이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직접민주주의의 의미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반민주적으로 여겨지기에 이릅니다. 민주주의의 원형이자 한때는 유일한 형태였던 직접 민주주의는 배제되었고,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정통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발하는 정치 과정으로 축소되고 인민의 지배나 민중의 권력, 또는 국민 전체와 정부 형태의 관계라는 차원의 문제는 점차 망각되었습니다.

 

(2)의회제 내의 투쟁이라든지 시민권을 둘러싼 투쟁 등 정치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투쟁도 중요하지만 사회관계와 문화의 발전 역시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주어진 것도, 허락된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발달은 인민 대중이 그것을 요구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조직했기 때문이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 없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고 운동이 없는 제도만의 민주주의는 가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직선이 아니라 파동의 형상을 띄며 발전해야한다.

(3)역사학의 출발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고, 사료가 아니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국정농단, 선거제도개헌, 등등의 포인트들이 있다.

이 문제들은 대의 민주주의(자유주의)에서 대의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기결정권 아테네 추첨제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건 주객전도 된 일이다.

-추첨제의 환상 아르콘이 민중에게 개방되면서 아르콘의 권력은 줄어들었고

군사령관인 폴레마르코스는 군사지휘권을 스트라테고스(각각의 부대를 지휘하는 사람)에게 넘깁니다. 이들은 행정 업무도 관장하면서 권력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아르콘은 사법관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습니다. 기존의 폴레마르코스를 대신하여 스트라테고스는 군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다른 행정관들과는 달리 스테라테고스만이 매년 선거로 선출되었으며, 무한 재선이 허용되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이 정치권력을 장악할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아테네 민주정을 대표하는 페리클레스는 스트라테고스를 15번 연임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민중도 스트라테고스가 될 수 있으나, 사실상 그 직위는 유서 깊고 부유한 가문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추첨제는 민주정의 상징이지만 정치권력의 방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민주평화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참여 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가는 것을 인권과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의 차이에서 대안 모색

 

*앞으로의 민주주의

그간 민주주의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공적 통치의 공식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전의 모든 종류의 비정치적 관계들이 점차

민주적 의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성, 성별, 인종, 장애, 기타 차이의 정치의 다른 문제들이 겹쳐지면서 이런 상황에서 인민 또는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특정의 조직 원리로서의 민주주의의 의미를 심층 민주주의를 위한 폭넓은 사회윤리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범위가 사회 조직의 문제로 확대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시민권이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을 넘어 문화권,

적 선택권,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위한 기본권까지 포괄시켜야 합니다.

 

 

이주교류

 

1. 대항해 시대

 

*동기 : 돈축적 + 지배자 욕망 (아시아 길을 개척해 향신료, 금을 얻기위해)

*아시아가 주도 못함 (정화의 대원정 이후 해금정책)

why? 직접- 국내 정치분쟁 , 근본적- 지적, 물질적 유인이 없었다. (이미 잘살고 있었다.)

 

대항해의 첫 번째 의미는 인류 경제나 인류 역사의 세계화 현상이다. 두 번째 의미는 유럽 국가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근대화,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세계적인 세력으로 도약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의미는 어떤 경우든 결과는 상호적이기에 유럽인과 비유럽인 간의 장기간에 걸친 만남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단점으로는 식민주의적 생각으로 신대륙들을 수탈의 대상으로바라보도록 했다는 것.

그를 정당화 하기위해 인종주의적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2.인종주의

 

지난 500년간 유럽국가들이 힘을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가며 다른 대륙들의 사람들을 살육, 노예화, 착취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념이 바로 인종주의이다. 2차대전 시기에는 독일인들이 유럽에서 600만에 달하는 유태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반유태주의도 역시 인종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인종주의가 이렇게 부정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그것이 인간 사이의 우열을 가정함으로써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고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인간을 도구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종주의만큼 반인륜적이고 비도덕적인 이데올로기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이후 약화된 것 같이 보였던 인종주의의 망령이 최근에 와서 다시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80-90년대의 경제적 침체 속에서 유럽 국민들 사이에 이민노동자를 비롯한 자국내 외국인에 대한 증오가 커지며 이것이 인종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냉전 이후 사회의 보수화와 함께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종주의가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부딪쳐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먼저 인종은 보통 인간의 다양한 범주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과거에는 생물학적 특징으로 인종을 구분했다면 최근에 와서 신체 인류학자들은 세 가지 특징에 의해 인종을 구분한다. 먼저 피부색깔, 머리칼이 조성, 몸이나 얼굴모양 같은 해부학적 특성, 둘째로 대사율, 유전적 질병, 호르몬 활동 등의 내과적 생리학적 특징, 셋째로 혈액의 성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집단을 나누는데 이러한 요소를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종은 생물학적인 개념으로서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종은 과학적으로는 모호한 개념이나 사회학적인 분석에서는 그 사회, 정치적 중요성이 더 중요하므로 인종개념이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개인의 모든 행동적 특질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사회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지능에서도 유전적 요소보다 계급, 가족, 언어, 인식능력의 발전 같은 사회적 변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다종족 사회에서 종족은 분배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초 단위이다. 종족집단들은 사회속에 편입되면 사회속 지위에 따라 사회적 자원을 분배받는다. 그것은 자연히 종족적 불평등을 야기 시키고 종족적 불평등의 체계는 그런 지배와 예속의 형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신념체계,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문화나 생활방식이 친숙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 반면 다른 종족의 문화나 습관은 잘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종족중심주의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수도 있으므로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건강한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종주의로 까지 발전하면 문제가 된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인종주의 X , 중세시대에 들어서 기독교문화를 통해 유태인 박해 시작

+ 새로운 대륙의 야만인들을 Monsta 라고 지칭 >> 인종주의 시작

 

신대륙 발견과 함께 흑인원주민을 노예화함 . 노예제의 제도화와 인종적 열등성을 주장하기 위해 흑인은 생리,심리학적으로 노예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종이론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다윈의 이론을 사회적 관계에 적용한 이론이 사회적 다위니즘이다. 사회적 다위니즘이란 다윈이 주장한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법칙이 주인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학에 적용시키려한 것으로 사회도 생물계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동질적인 것에서 복잡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했다. 인종차별적인 정책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고 소수 자본가들의 경제 독점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19세기 자유주의에 의해 유럽 내에서 유태인의 세력이 강해지자 겁을 먹었던 유럽인들은 반유태주의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 때 다위니즘은 근대적 반유태주의가 인종주의적 성격을 갖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기독교로 개종했거나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들 까지도 이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유태교를 믿는 다는 종교적인 성격, 다른 옷, 다른 관습과 문화를 가졌다는 의미의 문화적 성격을 넘어섰다. 유럽인 피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개종이나 세속적인 특성을 가진 유태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고 보았다.

 

히틀러가 이끈 민족사회주의 운동의 반유태주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히틀러는 세계사를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인종들 사이에 끝없는 투쟁으로 보았고, 그 투쟁에서 아리안족의 유럽이 국제적 유태인 집단에 의해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계급투쟁이라는 명목 하에 아리안의 인종적 통일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태인들이 조종한다고 믿었던 볼셰비즘을 아리안유럽의 주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유럽인 학살의 비극을 경험한 유럽 여러나라는 2차 대전 이후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인종주의적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그러나 사라진 것 같았던 인종차별주의가 1970년대에 두 차례 오일쇼크와, 아시아 경제의 급 성장에 따른 유럽경제침체가 야기되자 80년대 이후 모습을 드러내며 점점 강화되는 추세이다. 또 동구권에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민족주의가 다시 발흥하여 반유태주의도 강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90년대 들어서 서유럽에서는 아랍이나 터키계의 이민이나 외국이 노동자에 대한 살인을 포함한 폭력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교육체계를 통해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극우파들은 자신들이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명확히 하며 비유럽계 소수종족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신체적 특성이 아닌 자국의 민족 정체성을 위협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라서 이러한 새로운 소위 문화적 인종주의를 전통적 인종주의와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인종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인종주의는 문화와만 관련되는 것이 아다. 그것이 기본적으로는 실업률 증가와 경제적 불만에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과거의 식민지에 대한 백인으로의 우월감, 이슬람 교권에 대한 종교적 적대감 등과 섞여 있기 때문이다.

 

 

**결론**

오늘날의 세계화 된 사회에서도 아직까지 생물학적, 문화적, 전통적 인종주의의 명확한 구분은 없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다른 신체적 타입으로 구분 되고 그 신체적 특징이 본질적으로 다른 문화, 개성, 지능과 연결된다. 이러한 인종주의의 특징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문화적, 전통적으로 인종주의를 구분하고 생물학적 인종주의로 인한 차별이 아닌 문화적인 요소로 인한 인종차별이라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인 발상이다. 서론에서 제기하였듯 인종주의는 그 뿌리에서 오점을 보인다. 이는 흑인 노예제도나 유태인 학살과 같은 끔찍한 반인륜적 사태를 발생시켰고 현재의 인종차별의 근원이 되었다. 사회가 각박해 질수록 인간은 서로를 금을 긋고 테두리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두고 그 곳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는 자칫 타 무리를 배척하고 폄하하는 모습으로 변질 될 수 있다(실제로 그러하다). 우리는 인종차별의 근원을 통해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인종주의에는 모순이 존재하며 앞으로도 우리는 인종차별에 근거한 모든 생각과 행위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교수님 point!

Q1. , 제도를 바꿔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이루어질까?

Q2. 인식적 개선은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A. 차별은 문화적원인이 아니라 경제적원인도 있다.

이권을 위해 상화 권력관계를 나누는건 인간의 본질?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역사

*1의 물결 (참정권 위주의 제도타파) - 19C 후반부터 제 1차 세계대전까지 (신여성이 기반됨!)

12의 물결 사이에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여성들은 남성의 직무를 대신하면서도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 가정적인 아내의 역할을 강요받음 . >> 참정권도 가졌고, 노동도 하는데 여전히 불공평해!

*2의 물결 (가부장제, 일상속의 차별 타파) - 특히 68혁명 이후. 1960년대이후

남자와 여자의 이분법적 사고와 함께 기득권인 남성이 가부장제의 억압속에 여성을 가두기 때문에

차별이 여전히 이뤄난다고 생각함 >>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레디컬 페미니즘 대두

성차별 ( 성적대상화/ 성적자기결정권 ) 매우중요한 문제 !>> 낙태법폐지운동, 피임문제 중요하다!

>> 많은 제도적, 인식적 개선됨 but 한국은 아직 멀었다

 

2.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대중정당 모델 쇠퇴와 자본에 대한 대항력을 잃은 노동자 운동에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았으며 이러한 자본의 이익에 포획된 민주주의를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불평등의 심화에 의한 정치구조의 변화에 주목한다.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까지 운위되는 암울한 전망에 여성의 진출은 한국사회에 대두 된다. 한국에서도 성평등 관련 법, 제도가 확대되었다.

한마디로 불평등의 심화, 공공성의 후퇴, 정당정치의 몰락, 노동자운동의 쇠락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성평등은 무시할 수 없는 경향으로 부상했다. 성평등의 제도화와 몇몇 가시적인 개선에도 사회 각 부분에서의 성별 격차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욕과 재생산의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결정이 제한받는 상황은 그대로이다. 주권인민의 절반인 여성의 평등한 자유는 요원하며 여성이 빠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어떤 민주적 변화도 여전히 부분적일 것이다.

안티 페미니즘 , 페미니즘 리부트

10대 남자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보다 혐오를 먼저 배움. 페미니즘운동에 반발해 남성들이 자신들의 피해와 차별을 서사하고 여성들을 꿀빠는 존재라고 묘사. 이는 어떤평론가가 군대에서 비롯된거라고 이야기함. 그러나 20대 청년여성들은 거기에 반발해 페미니스트 선언, 혐오돌려주기 등으로 대응.

현재는 미투와 위드유 운동등으로 활발히 이어가고있음

성별 격차와 가족의 해체

가족제도와 임신출산에 대한 영향은 성별마다 다르게 나타남

단편적으로 여성의 고용률 M자 곡선을 이룬다. (출산이 많이 이뤄지는 30대에 저점)

이후 상승한다해도 비정규직 고용률이 높음 (노동의 질 저하)

대학진학률이 여성이 더 높은 현재에 이러한 불평등은 고쳐지지 않고있음

그래서 많은 인식들의 변화로 이어짐.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인식변화, 결혼시기늦춰짐, 출산률 저하 등.,,

원인과 의미는 단정할 수 없지만 교육에 의해 뒷받침되는 여성의 자기실현 및 사회적 성취 욕구의 증대가 기존의 결혼, 가족규범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불변의 변화 여성의 육체 도구화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를 성차별이라고 부른다. 현대 사회에선 법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동등하게 규명하므로 성차별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현대 우리사회는 여성의 고유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성맹목 사회이다. 여러 법제들이 새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음은 명시하지 않고있음. 성맹목 사회에선, 성 도덕의 이중기준이 작동한다. 그렇기에 남성이 성폭력을 실수로 저지르지 않도록 펜스룰을 제도화 하려한다. 하지만 성폭력은 여성과 남성을 격리하고 여성의 몸단속을 독려한다고 예방 되지 않는다. 폭력의 감축은 여성의 육체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 다른 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배양할 때 가능하다. 이에 대해 여성들의 자기목소리를 낼수있게한 미투 위드유 운동은 고무적이다. 그리고 검은시위와 낙태죄 폐지운동, 미프진 합법화 운동이 현재 진행중. 서구에서는 60년대 말 성 정치가 부상한 이래 피임,낙태,성폭력 등의 문제가 여성의 자율성 증진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주목 받았다. 또한 기존의 성 역할 고정관념 및 성욕에 대한 통념,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일상 뿐만 아니라 정책면에서 여성의 요구가 고려되지 않는 실정이다. 최근에 일어난 낙태죄 폐지 운동미투’ ‘위드유운동은 여성의 권리 전반에 대한 논의 확대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이 운동들의 핵심은 여성들 스스로 여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천명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공론화하는 데 있다.

 

*결론

여성해방운동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사회운동의 방식을 바꾸고, 정치의 의미를 바꾸었으며, 그리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어놓았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는 가부장제가족 모델이 서구사회에서 해체되고 있다. 출산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들이 이러한 변화의 증거이다. 재혼 가정, 한 부모 가정, 독신자들이 많아지며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 또한 또 다른 증거이다. 이런 변화에는 여성의 독립 신장이 기여한 바도 어느 정도 있지만, 여성이 이등시민이라는 점은 부정할수 없다. 경제활동참가율, 고용형태, 정치적 대표성, ,사 부문 임원 비율등에서 나타나는 성별 격차가 대표적 증거다. 가족 내 아내와 어머니 역할을 여성의 자연적 소명으로 규정하는것도 여전하다. 또한 공,사 영역을 넘나드는 성폭력의 위혐은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완전성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여성의 내부적 배제는 성차에 기초를 두며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서 기인한다. 결혼과 가족으로 대표되는 관계는 문명의 조직화에서 근본적이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자유는 제한되고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기여는 무시되고 가치절하 되었다. 여성의 가치를 육체 그 자체, 남성의 필요에 따른 성욕과 재생산의 기능으로 평가하고 도구화했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지속되는 한 여성은 여전히 2의 성인 것이다.

여성의 차이가 인간과 시민의 형상에서 벗어나는 변이 또는 잔여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고유한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게 될 때 비로소 여성은 평등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 point !

남녀관계는 노-자 관계처럼 적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다 (for 이익) = 무리한 유비

페미니즘= 젠더(사회적인 성)평등 :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

*성차별이 일어나는 범주

1) 제도/구조적 범주 : 권리, 역할, 의무차별 (분리시키고 고정시킴)>기회와 처우의 차별

2) 문화/행위자 범주 : 의식, 관행의 지속 > 사건의 발생

*성차별의 원인

1) 사회구조적 원인 = 자본주의(계급사회 체제) / 가부장제 문화

2) 생물학적 토대 = (sex)적 차이 >>> 없앨수 없으니 인정하고 존중 배려

*페미니즘의 현대적 의미

1. 인권

2. 민주주의(자기결정권) >>4개의 테마 모두 그렇게 접근 가능하다.

 

 

 

*역사란?

-역사학의 공부할 때 중요한 것 (for 진실에 접근)

1) 자기중심적 사고 탈피 : 계급적 관점 / 인종적 관점 / 젠더관점

2) 복수의 역사 : 유일하고 단일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History + Herstory = histories

3) 정보화 시대 : 주체적 처리, 판단능력, 여러관점의 수용, 훈련필요

4) 진실에접근하기 위해선 ‘WHY?’를 계속 묻는다 ‘FOR WHOM?’ 또한. >> 원인진단 > 대안모색

-역사는 시간적 맥락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인간의 존재론 특성 :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사유 (Thinking)

1) 개념적 이해 : 철학이 주조

2) 그 개념을 공허하지 않도록 현실기반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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